2018년 6월 11일 월요일

[Day 86] Where I Lived

[Day 86] Where I Lived

[86-1]


I have read in a Hindoo book, that “there was a king’s son, who, being expelled in infancy from his native city, was brought up by a forester, and, growing up to maturity in that state, imagined himself to belong to the barbarous race with which he lived.
힌두 경전(book)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었었다. 갓난아기 때(in infancy) 고향에서 쫒겨나(be expelled) 숲에 버려졌고(be brought) 그 상태로 어른으로 성장(growing up to maturity)하여 스스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with which he live) 야생(barbarous)의 일족에 속한다고 생각해왔던 왕의 아들이 있었다.

* being expelled~, was brought up~, and, growing up~, imagined himself~; 접속사 and를 중심으로 균형을 맞춘 문장. 앞문장 수동태 짝, 버려져서(이유) 키워지고; 뒷문장은 능동형 짝, 성장해서(이유) 스스로 여김

One of his father’s ministers having discovered him, revealed to him what he was, and the misconception of his character was removed, and he knew himself to be a prince.
그의 아버지중 한 신하가 그를 발견하고 그가 이전에 뭐였는지(what he was) 드러냈고(알려줬고, revealed) 그의 본성(character)에 대한 오해가 제거되자 그 스스로 왕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돼다.

* 환경이 정신에 주는 영향: 숲에서 야생으로 자랐을땐 야생의 일족이라고 '스스로' 여김.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주변에서 왕자라고 알려주니 '스스로' 왕자가 되었음

So soul,” continues the Hindoo philosopher, “from the circumstances in which it is placed, mistakes its own character, until the truth is revealed to it by some holy teacher, and then it knows itself to be Brahme.”

힌두경전의 철학자는 계속하길, "그러니까 정신은 것은 처해진(be placed, 수동형)환경으로부터 본래의 성격(own character, 본성)이 오도한다(soul~mistake). 신성한 스승(이 또한 주변인-환경-이다)에 의해 밝혀지고(be revealed~, 수동형) 나서야 스스로 브라마계급이란걸 깨닳는다(know).

* '가르침'과 '깨닳음'의 차이: '환경'과 '주변인'의 가르침으로 정신의 완성된다는 생각은 동북 아시아의 정신을 강조하는 철할, '정신'을 우선시하는 깨닳음과 차이를 보이는 시각이다.

[86-2]


I perceive that we inhabitants of New England live this mean life that we do because our vision does not penetrate the surface of things.
나는 우리 뉴잉글랜드의 거주자들이 우리의 안목이 물질(things)의 표면을 관통하지(물질의 본질을 꿰뚫지) 않기 때문에 비참한 삶(mean life)을 살고 있다고 인식한다(perceive).
* 물질의 의미를 관통하지 못하고 빈곤에 비중을 두면 생활이 비참해짐.

We think that that is which appears to be.
우리는 존재를(to be)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는 겉으로 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한다.

If a man should walk through this town and see only the reality, where, think you, would the “Mill-dam” go to?
만일 한남자가 걸어 이마을을 둘러보며(walk through) 실질(본질) 만을 본다면 당신이 생각하기에(think you, 도치문 삽입) 밀담(콩코드 시의 중심부)는 어디가 되겠는가?

If he should give us an account of the realities he beheld there, we should not recognize the place in his description.
만일 그가 그곳에서 얻은 실체의 한 장면을 우리에서 설명한다면 그의 설명에서 어느 장소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 이방인이 본 사물(콩코드라는 마을의 각종 건물)의 본질과 우리가 외형을 알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을 것이다.

Look at a meeting-house, or a court-house, or a jail, or a shop, or a dwelling-house, and say what that thing really is before a true gaze, and they would all go to pieces in your account of them.
공회당, 법정, 감옥, 가게, 주택을 관찰(look at)해보고 참된 시선 앞에서(before a true gaze) 진정 그 사물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그것들에 대한 당신의 설명(account)은 모두 산산히 부서질 것이다(go to pieces).
* 겉으로 봐왔던 마을의 중요 건물(사물/물질)들의 의미를 꿰뚫어 보면 의미는 사소하게 될 것이다.

Men esteem truth remote, in the outskirts of the system, behind the farthest star, before Adam and after the last man.
인간은 규범(the system)의 외곽에서 저 먼 별의 뒤에서 아담의 이전에 (세상의 종말)마지막 인간 이후에 한발짝 물러나(remote) 진실을 평가한다.

In eternity there is indeed something true and sublime.
진실되고 고귀함은 정말 영원속에 있다.
* 진실함과 고귀함(추상적이고 정신적인 것)은 영원하다.

But all these times and places and occasions are now and here.
하지만 모든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연(occasions)(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 영원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고있다.

[86-3]


God himself culminates in the present moment, and will never be more divine in the lapse of all the ages.
신 조차 지금 이순간을 가장 우선시 하며(culminate) 이전 세대의 어느 기간때보다 더 신성시 되었던적은 없을 것이다.

And we are enabled to apprehend at all what is sublime and noble only by the perpetual instilling and drenching of the reality which surrounds us.
우리는 무엇이 고귀하며 우아한지 영속적인 가르침(instilling)과 우리를 둘러싼 실제에 파묻힘으로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우리를 둘러싼 물질에 대한 현실적인 성찰 없이 영원을 이야기 할 수 없다.

The universe constantly and obediently answers to our conceptions; whether we travel fast or slow, the track is laid for us.
우주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순리적으로 우리의 개념화(진리탐구)에 답한다. 비록 우리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여행하던 그 길(track, 궤도/가기로 정해진 길)는 우리를 위해 놓여졌다.

Let us spend our lives in conceiving then.
그러니 계획하며(in conceiving) 우리의 삶을 살아가자.
* 우주는 우리가 계획한 만큼 이루어지리라.

The poet or the artist never yet had so fair and noble a design but some of his posterity at least could accomplish it.
그어느 시인이나 예술가도 멋지고 우아한 기획을 해놓지 못했 더라도 그의 후손(posterity)은 적어도 그것(계획)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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