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 수요일

An Indian Teacher Among Indians (IV)

An Indian Teacher Among Indians (IV)
by Zitkala-Sa [aka Gertrude Simmons Bonnin] (1876-1938)

IV.

RETROSPECTION.(회상)

Leaving my mother, I returned to the school in the East. As months passed over me, I slowly comprehended that the large army of white teachers in Indian schools had a larger missionary creed than I had suspected.

학교로 돌아왔다. 수개월이 흐르면서 인디언 학교에 근무하는 거대한 백인 선생의 집단은 내가 의심 했던 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선교 신념(creed)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점차(slowly)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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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one which included self-preservation quite as much as Indian education.

그것은 '인디언 교육(교화)'라는 자조(자립)에 포함된(include) 것이었다.

* '선교신념'이라는 것이 스스로 일어서라(자조)는 인디언 교육의 허울속에 스며든 인디언 말살 흉계 임을 깨닳다.

When I saw an opium-eater holding a position as teacher of Indians, I did not understand what good was expected, until a Christian in power replied that this pumpkin-colored creature had a feeble mother to support.

아편쟁이(opium-eater)를 인디언 교사의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을 보면서 권력을 쥔 기독교도들이 이 호박색 창조물들이 부양해야할 허약한 어머니가 있다는 것에 대답을 하기 전까지, 나는 (교육에) 어떤 선의를 기대했는지 이해 하지 못했다.

* 인디언들의 정신을 말살 시키기 위해 취한 정책이 술과 마약 이었을 것이다. 아편전쟁을 상기해보라. '아편쟁이'를 백인들이 인디언 학교에 임명한 인디언으로 보자. 호박색 피조물은 바로 인디언 선생이다. 백인들은 그 인디언이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점을 빌미로 동족인 인디언들을 교화 시키도록 내몬 것이다. 그 인디언을 비굴하게 만든 것은 백인들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지기 전까지 백인들의 '선교교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겠다.

An inebriate paleface sat stupid in a doctor's chair, while Indian patients carried their ailments to untimely graves, because his fair wife was dependent upon him for her daily food.

인디언 환자가 질환을 가지고 종국에는 무덤에 들어가는 동안 취하게 시킨(inebriate: ~를 취하게 하다) 백인이 의사의 자리에 앉아있다. 그(백인의사)의 반반한(fair) 아내가 일상의 음식이 그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 인디언 환자에게 술과 마약을 처방한 백인 의사 역시 호구지책 때문에 악행을 하고있다. 늙은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인디언이나 반반한 아내를 가진 의사나 모두 수탈의 최전선에 내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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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ind it hard to count that white man a teacher who tortured an ambitious Indian youth by frequently reminding the brave changeling that he was nothing but a "government pauper."

* changeling: 바꿔친 아이, 저능아, 바보
* pauper: 구호대상자

나는 그 백인 남자(의사)를 선생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는 야심있는 인디언 젊은이를 열등한 '정부의 구호대상자'일 뿐이라고(nothing but=only) 지속적으로 상기 시킨다.

* count (O) (OC): (O)을 (OC)라고 간주하다.

* 부족을 이끌어 보겠노라며 나선 젊은 인디언을 꼬드겨서 '너희는 열등해' 라며 세뇌교육 시키는 백인 남자는 '교육자'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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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 I burned with indignation upon discovering on every side instances no less shameful than those I have mentioned, there was no present help.

* indignation: 분개. 분노.

모든 면에서 내가 말한 것보다 덜 모욕적적인 경우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에 분노가 불타올랐지만 현실로 나타난 것은 없었다.

* 내가 말한 모욕적인 경우보다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분해서 치를 떨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디치기만 했다.

Even the few rare ones who have worked nobly for my race were powerless to choose workmen like themselves.

게다가 나와 같은 인종을 위해 일했던 고귀한 몇 안되는 사람들 조차 그들처럼 일할 사람을 선택할 권력이 없었다.(동료를 뽑을 권한이 없었다.)

* 그나마 소수의 '착한' 백인은 인디언 동료를 선택할 권한이 없다. 말단 공무원 임명권은 정부고위 관료들에게 있다.

To be sure, a man was sent from the Great Father to inspect Indian schools, but what he saw was usually the students' sample work made for exhibition. I was nettled by this sly cunning of the workmen who hookwinked the Indian's pale Father at Washington.

확인차(to be sure) 백인 정부에서 인디언 학교를 시찰할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찰자가 보고가는 것은 학생들의 보여주기식(for exhibition) 견본 작품이 대부분 이었다. 나는 이런 워싱턴에 있는 인디언 정책 백인 담당자(indian's pale Father)를 호도하는(hookwinked) 교활한 속임수(sly cunning)에 치를 떨었다(ne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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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illness, which prevented the conclusion of my college course, together with my mother's stories of the encroaching frontier settlers, left me in no mood to strain my eyes in searching for latent good in my white co-workers.

* My illness let me in no mood~

대학과정을 고만 두게 했던 나의 병은 엄마에게서 들은 (백인)이주자들의 (인디언 영토)잠식(encroaching) 이야기와 더블어(together with~) 백인 동료들에게 잼재해 있을지도 모를 선의(latent good)를 찾느라 눈을 붙잡아둘 기분이 아니도록 했다.

* 백인 부역자들이 변명할 때 '착한백인' 도 있다고 하지만 현재 동족이 받는 침해를 보면 그럴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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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is stage of my own evolution, I was ready to curse men of small capacity for being the dwarfs their God had made them.

나의 성장(성찰)중 이 단계에서, 나는 그들을 창조한 그들의 신을 난장이로 만든 속좁은 남자를 저주할 준비가 되었다.

* 침탈의 명분으로 신의 교리를 앞세운 것은 그들이 믿는 신을 모욕하는 짓이다.

In the process of my education I had lost all consciousness of the nature world about me.

나의 교육과정에서 나의 본성의 자각을 잃어 왔다.

*백인들의 교육과정은 인디언 전통의 말상과정이다.

Thus, when a hidden rage took me to the small white-walled prison which I then called my room, I unknowingly turned away from my one salvation.

결국, 숨은 분노가 나를 하얀 감옥이라 부르는 나의 방에 가두는 꼴이 되자 나는 부지불식간에 나의 유일한 구원에서 멀어졌다.

* 스스로 만든 하얀방:  자기종족을 비하하고 그로인해 창피하여 나서지못하는 꼴을 자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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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in my room, I sat like the petrified Indian woman of whom my mother used to tell me. I wished my heart's burdens would turn me to unfeeling stone. But alive, in my tomb, I was destitute!

* destitute: 가난한, 결핍한

내 방에 홀로 엄마가 한때 내게 말했던 대로 겁먹은(petrified) 인디언 여자의 꼴로 앉아있었다. 나는 내 마음의 짐이 (동족의 고통에)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내 무덤속에 가진것 없이 살아있다! (이제껏 누린 모든걸 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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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white man's papers I had given up my faith in the Great Spirit. For these same papers I had forgotten the healing in trees and brooks.

나는 백인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위대한 신(인디언 정령)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 그런 증명서들을 위해 나무와 강(brooks)이 주던 위안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

On account of my mother's simple view of life, and my lack of any, I gave her up, also.

내 어머니의 단순한 인생관, 그나마도 못했던 나의 인생관 모두 포기하였다.

I made no friends among the race of people I loathed. Like a slender tree, I had been uprooted from my mother, nature, and God.

나는 내가 저주를 퍼붓던 인종들 사이에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어머니와 자연과 신으로부터 뿌리채 뽑힌 가녀린 나무였다. (인디언의 정체성을 잃은 가녀린 존재였다.)

I was shorn of my branches, which had waved in sympathy and love for home and friends. The natural coat of bark which had protected my oversensitive nature was scraped off to the very quick.

고향과 친구들의 사랑으로 물결쳤던(나부꼈던) 나의 가지들이 잘려 나갔던 것이다(be shorn; shear). 나의 왕성한 감성을 보호해주던 자연의 외피가 벗겨져(scraped off) 속살(quick)이 드러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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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a cold bare pole I seemed to be, planted in a strange earth.

이제는 이상한 땅(백인의 영토)에 박힌 추위에 떠는 벌거숭이 막대기 신세다.

Still, I seemed to hope a day would come when my mute aching head, reared upward to the sky, would flash a zigzag lightning across the heavens.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솟은 침묵에 시달린 나의 머리가 천국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번개칠 날이 오리라고 희망한다.

With this dream of vent for a long-pent consciousness, I walked again amid the crowds.

오랜동안 감금되었던(pent) 의식을 분출할(vent) 희망을 가지고 군중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겠다.

* 한때 야심찬 젊은 인디언 이었다가 백인들에게 사육되는 신세로 지냈다. 다시 각성하고 동족 속으로 들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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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last, one weary day in the schoolroom, a new idea presented itself to me. It was a new way of solving the problem of my inner self.

마침내 어느 피곤한 날 교실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안의 문제(고뇌)를 해결한 묘책이 떠올랐다.

I liked it. Thus I resigned my position as teacher; and now I am in an Eastern city, following the long course of study I have set for myself.

나는 그 생각이 좋았다. 교사일을 그만 두고 지금 동부 도시로 와서 내 자신게게 다짐한 긴 공부의 과정을 밟는 중이다.

Now, as I look back upon the recent past, I see it from a distance, as a whole.

지금은 최근의 상황을 뒤돌아보메, 거리를 두고 물러나서 전반적으로 보게 됐다.

I remember how, from morning till evening, many specimens of civilized peoples visited the Indian school.

온종일(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부류의 문명화된 사람들이 인디언 학교를 방문 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The city folks with canes and eyeglasses, the countrymen with sunburnt cheeks and clumsy feet, forgot their relative social ranks in an ignorant curiosity.

* The city folks~, the countrymen~ forgot....

단장과 안경을 쓴 도시 것들, 햇볕에 타고 굼뜬 시골 촌뜨기 할 것 없이 어리석은 호기심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망각했다.

* 도시화는 물론 농업화 모두 나름대로 문명화 이긴 하다.

Both sorts of these Christian palefaces were alike astounded at seeing the children of savage warriors so docile and industrious.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both sort of~) 이 백인 기독교도들은 야생의 전사들이 이렇게 순종적(docile)이고 근면(industrious)하게 변한 것을 보고는 놀라워 했다.

* 도농 격차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모두 잊고 오직 한가지, 자신들이 인디언들을 교화시켰다며 놀라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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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nswers to their shallow inquiries they received the students' sample work to look upon.

그들의 얄팍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은 학생들의 보여주기식 작품들을 받았다.

Examining the neatly figured pages, and gazing upon the Indian girls and boys bending over their books, the white visitors walked out of the schoolhouse well satisfied: they were educating the children of the red man!

인디언 소년 소녀들이 그들(백인들)의 책에 구부려서(업드려;복종의 의미) 책장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면서 백인 방문객들은 만족을 가지고 학교를 떠났다. 그들은 빨간 사람(전통의 인디언)의 아이들을 교화시키는 중이다!

They were paying a liberal fee to the government employees in whose able hands lay the small forest of Indian timber.

그들(백인 방문자)은 공무원들 세비(liberal fee)를 내고 있다. 그들의 쓸만한 일손(able hands)인 인디언 재목의 작은 숲을 일구는 중이다(lay: 돈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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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fashion many have passed idly through the Indian schools during the last decade, afterward to boast of their charity to the North American Indian.

북미 인디언을 향한 자선을 내세우며 지난 십여년간 인디언 학교 전반 이런 식으로 서서히 흘렀다.

But few there are who have paused to question whether real life or long-lasting death lies beneath this semblance of civilization.

하지만 문명이라는 허울(semblance: 외관) 아래에 진실된 삶 인지 막막한 죽음이 놓여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멈추려 했던 사람(인디언이든 백인이든)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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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An Indian Teacher Among Indians' 고백이 담긴 계몽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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