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0일 월요일

[The Gilded Six-bits] 'fix', 단편소설에서 한 단어의 위력

[The Gilded Six-bits] 'fix', 단편소설에서 한 단어의 위력

단편소설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계몽소셜류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진 것과는 무관하게(작가의 직접 해설을 듣지 못했으므로) 독자의 관심사, 읽는 시점의 사회적 분위기 등의 영향을 받아 달리 해석되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런 까닭에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를 찾아보려고 과한 노력을 하다 소설 읽는 재미를 놓치는것은 아닐까?

이 소설을 재미로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젊은 부부의 격렬한 사랑, 배신 그리고 희망적 결말이라는 어쩌면 통속적 단막극 쯤으로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작가는 filmmaker 이기도 하다.) 눈에 선할 정도로 치밀한 장면 묘사가 작품 전반에 걸쳐있다. 이를테면, 남편을 맞기위해 몸단장하는 모습은 육감적이다. 비록 신문지일 망정 잘 접어 부엌선반에 깔아놓은 모습은 알뜰한 아내의 모습이다. 풍요하진 않더라도 곤궁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둘의 대화 속에서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도시에서 굴러먹다 온 사기꾼이다)에 대한 남편의 부러운 시선, 아내의 은근한 끌림도 드러난다. 곤궁하진 않더라도 사랑과 더블어 다소의 풍요함도 마다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여기에 외부세상에 대한 남편의 동경이 더해진다. 그러다 사단이 벌어진다.

예정에 없이 일찍 퇴근한 남편은 침대맡에 발이 네개인 것을 목격한다. '처용'과는 다르게 남편은 사기꾼을 한방에 때려 눕힌다. 그리고 멱살잡이 때 사기꾼이 뻐기던 금장 시계줄과 장식으로 달린 금동전이 가짜인 것을 알고는 실소를 금할길 없다. 부부의 갈등과 해결의 과정이 이어진다. 남편은 떠나지 않고 가끔씩 집에 들러 자고 간다. 그때 마다 금동전을 베갯닢에 놓고 가곤 한다. 아내는 비참하다. 그러다 어느날에는 가짜 금장 시계줄을 놓고 갔다. 아내는 그것을 발견하고 가짜였음을 안다.

금동전(실은 금박입힌 가짜) 가지고 뻐기던 사기꾼의 실체가 드러나고 남편의 어머니가 등장하여 화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첫손자가 아들과 닮았다고 말한다. 이에 남편은 누그러지기로 한다.

이 소설의 결말중 여주인공의 대사에 나오는 한 단어 'fix' 가 주는 의미가 기묘하다. '손보다'를 넘어 '혼내주다'로 이해하기에는 무리다. 저간의 사정이 중한데 유책 배우자가 단숨에 상황을 역전 시켰단 말인가? 남편이 동전을 던진 것을 부부간 성의 댓가를 했다고 화를 낸 것 같지않다. 이미 남편은 누그러진 상태이고 아내도 그것을 바랬으니까.

소설의 첫장면에서 동전을 던져 소리를 내는 것의 의미는 행복한 장난(joyful mischief)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끝장면의 동전 소리는 부부관계의 복원의 종소리다. 처음보다 더 강하게 울린다. 15번이다! 그렇다면 'fix'는 '복원'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 단어 'fix' 는 세번 나온다. 불행한 사고가 벌어진 다음날 아침밥을 차려달라는 의미로 쓰였다. 두번째 fix는 시어머니가 손자를 받아들고 며느리 산후조리의 의미로 쓰인 'fix' 다. 끝으로, (어쩌면) 누그러진 남편을 맞으며 막 출산한 몸이지만, 곳 회복해서 전처럼 맞아 주리라는 의미의 fix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도 'fix'는 '고치다', '복원하다', '음식을 차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단편소설의 결말에 사용된 한 단어 'fix'의 해석에 따라 들려주는 울림의 위력은 아주 크다. 이 소설에서 벌어진 사건은 현실 세계로 보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의 상황이지만 단편소설 아닌가. 그렇게 풀어지기로 하자. 그게더 독자로서 기분좋은 일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가의 서사적 배경묘사는 영문학 공부하는 입장에서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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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읽기:
The Gilded Six-bits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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