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7일 목요일

[Day 28] Economy

[Day 28] Economy

The childish and savage taste of men and women for new patterns keeps how many shaking and squinting through kaleidoscopes that they may discover the particular figure which this generation requires to-day.

남녀를 막론하고 새로운 유행(new patterns)을 향한 유아적이고 미개한(savage) 취향은 (혹시나) 지금 세대에 당장 요구되는(써먹을 수 있는) 특이한 문양을 찾을 수도 있을 지도 몰라 만화경을 수도 없이 흔들고 사팔뜨기(squint) 눈을 하게(들여다 보게) 한다.

The manufacturers have learned that this taste is merely whimsical.

(유행의) 제작자(창조자)들은 취향이란 그저(전적으로) 변덕(whimsical)일 뿐이란 것을 배워 왔다(have learned, 과거분사구문, 익히 알고 있다.)

Of two patterns which differ only by a few threads more or less of a particular color, the one will be sold readily, the other lie on the shelf, though it frequently happens that after the lapse of a season the latter becomes the most fashionable.

한두가지 색깔만 다른 줄이 쳐진 두가지 문양(유행)중에 한가지는 잘 팔렸지만 다른 한가지는 선반위에 놓여 있었다. 나중 것 역시 계절이 지난 후 최신 유행이 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Comparatively, tattooing is not the hideous custom which it is called.

이에 비해, 문신은 말하는 것처럼 그리 끔찍한 풍습은 아니다.

It is not barbarous merely because the printing is skin-deep and unalterable.

피부 밑으로 새겨 넣어서라기 보다 변경 할 수 없다는 것이 야만적이라는 것이다.


 I cannot believe that our factory system is the best mode by which men may get clothing.

우리의 공장제도(공장에서 옷의 대량 생산)가 인간이 의복을 취하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동의하지 않는다).

The condition of the operatives is becoming every day more like that of the English; and it cannot be wondered at, since, as far as I have heard or observed, the principal object is, not that mankind may be well and honestly clad, but, unquestionably, that the corporations may be enriched.

(공장의)운영 상황이 날마다 영국과 비슷해져 가고 있다. (공장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내가 보고 들은 바로는(내가 아는 한) 주요 목표가 인간을 잘 입히자는 것이 아니라 의심할 것도 없이 회사가 부유해 지려는 것 임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cannot be wondered at)는 점이다.

In the long run men hit only what they aim at. Therefore, though they should fail immediately, they had better aim at something high.

장기적으로 인간은 목표한 대로 만 행한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실패 하더라도 좀더 높은 목표를 향하는 것이 나았다.

* 옷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데, 결말이 좀 싱겁다.


As for a Shelter, I will not deny that this is now a necessary of life, though there are instances of men having done without it for long periods in colder countries than this.

이제 집(Shelter, 은신처)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이곳보다 더 추운 곳(나라)에서 긴 기간동안 집 없이도 지내온 기간이(인간의 역사속에서) 있긴 했지만, 이제 집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 자연에서 집이 필수품이라는데 저항감이 있었던 듯하다. 인간의 집이 동물의 은신처에 비해 엄청나게 과한 측면이 있다. 은신처(Shelter)와 집(House)을 비교해 보자. 뒤에 서술되는 내용을 보더라도 집은 "안락함(어쩌면 사치스러운)"을 추구하는 인간 욕망이 있음.

Samuel Laing says that “The Laplander in his skin dress, and in a skin bag which he puts over his head and shoulders, will sleep night after night on the snow - in a degree of cold which would extinguish the life of one exposed to it in any woollen clothing.”

"그어떤 모직 옷을 입었더라도(in any woollen clothing) 이 날씨에 노출된(exposed to it)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될 만한 추위 속에서 가죽 옷을 입고 가죽 두건(skin bag)을 머리에서 어깨까지 두른 라플랜더(스웨덴의 북극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눈밭에서 매일밤 잠을 청한다."고 말했다.

He had seen them asleep thus. Yet he adds, “They are not hardier than other people.”
그(사뮤엘 라잉)는 그런 상황에서 그들(라플랜더)이 자는 것을 봐왔다며, 덧붙이길, "그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강인하진 않습니다." (강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But, probably, man did not live long on the earth without discovering the convenience which there is in a house, the domestic comforts, which phrase may have originally signified the satisfactions of the house more than of the family;

하지만, 아마도, 인간은 집안에 머무를 때의 안락함(the domestic comforts, 실내의 안락)이 주는 편안함을 추구하지(discovering the convenience) 않았다면 지구상에서 오래 살수 없었다. 실내의 안락함(the domestic comforts)이라는 구문은 가족(정신적 평온함)보다는 집(신체적 안전)이 주는 만족을 의미 해왔다고 하겠다(may have signified).

though these must be extremely partial and occasional in those climates where the house is associated in our thoughts with winter or the rainy season chiefly, and two thirds of the year, except for a parasol, is unnecessary.

이런 상황(실내의 안락함)이 주로 우기나 겨울에 집과 연관되어 생각나는 극히 부분적이고 상황이고 (온대기후에서는) 파라솔(양산)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일년의 3분의 2는 집없이도 지낼만 하긴 하다.

In our climate, in the summer, it was formerly almost solely a covering at night.

우리가 사는 곳의 기후에서, 여름에 집이란 거의 밤에 가림의 역활 한가지일 뿐이다(연속적 부사의 사용, 의역이 필요함)

In the Indian gazettes a wigwam was the symbol of a day’s march, and a row of them cut or painted on the bark of a tree signified that so many times they had camped.

인디언의 기록물(gazettes, 신문)에 따르면, 천막(인디언 천막)은 그날의 행진을 상징하고 얼마나 많이 야영을 했는지 나무 껍질에 새겨놓는다.

Man was not made so large limbed and robust but that he must seek to narrow his world, and wall in a space such as fitted him.

인간은 수족(limb)이 크지도 않고 강하지도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자신에게 딱 맞는 공간을 확보할 크기로 그의 세계를 좁히고 벽을 쳐야만 했다.

* 약한 인간은 신체를 보호하고 그안에서 활동도 가능한, 안락함을 느낄만한 공간이 확보된 집을 짖는다. 단지 자연의 혹독함을 잠시 피하기 위한 동물의 은신처를 감안해 보자.

He was at first bare and out of doors; but though this was pleasant enough in serene and warm weather, by daylight, the rainy season and the winter, to say nothing of the torrid sun, would perhaps have nipped his race in the bud if he had not made haste to clothe himself with the shelter of a house.

처음에는 그도 발가벗고 야외에서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지생활이 햇볕아래 맑고(serene) 따뜻한 날씨속에서 충분히 편안 했을 지라도, 찌는듣한(torrid) 태양은 말할 것도 없고(to 부정사 삽입구, 앞절의 온화한 태양이 아님) 우기와 겨울은 아마도 피난처(the shelter of a house)와 함께 옷을 입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그의 종족을 꽃보오리 상태에서 잘라냈을 것이다(꽃을 피워보지 못했을 것이다. "멸망 했겠지"의 시적 표현이라 할만 함).

Adam and Eve, according to the fable, wore the bower before other clothes. Man wanted a home, a place of warmth, or comfort, first of physical warmth, then the warmth of the affections.

우화에 따르면 (쫒겨난) 아담과 이브는 다른 옷을 구하기 전에 나뭇잎(bower)으로 가렸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따뜻하고 안락한 장소로서 뿐만 아니라 사랑의 온기를 나눌(the affections) 집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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