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Day 32] Economy

[Day 32] Economy

“As I live, saith the Lord God, ye shall not have occasion any more to use this proverb in Israel.”

"천주(the Lord God, the Almighty)께서 이르길(saith, say의 고어), 내가 사는한 이 속담(proverb, "가난이 영속" 된다는)이 이스라엘 에서는 더이상 (적용되는) 경우가 없으리라" (성경구절이라 함)

“Behold all souls are mine; as the soul of the father, so also the soul of the son is mine: the soul that sinneth it shall die.”

"주시하라, 모든 영혼은 나의 것, 아버지의 영혼으로서 아들의 영혼도 나의 것, 죄지은 영혼은 죽게 되리라" (역시 성경 구절이라는데, 영혼의 죄짖고 살지 말라는 뜻?)

When I consider my neighbors, the farmers of Concord, who are at least as well off as the other classes,

다른 부류에 비해 그래도 살만한(as well off as) 콩코드의 농부들은 내 이웃들을 살펴보니,

I find that for the most part they have been toiling twenty, thirty, or forty years, that they may become the real owners of their farms, which commonly they have inherited with encumbrances, or else bought with hired money,—and we may regard one third of that toil as the cost of their houses,—but commonly they have not paid for them yet.

그들 대부분은 20, 30, 40여년을 열심히(toil) 일해왔고 대개 부채(encumbrance)와 함께 물려 받거나 빌린돈으로 산 농장의 실제 주인이 될 테지만(they may~), 그 노력(toil)의 1/3은 집세였으리라 짐작되는데(regard~as~), 대부분 (부채를) 다 갚지 못했다(they have not~).

It is true, the encumbrances sometimes outweigh the value of the farm, so that the farm itself becomes one great encumbrance, and still a man is found to inherit it, being well acquainted with it, as he says.

부채가 농장의 가치보다 높아서 농장 그자체로도 부채가 되었고, 그들이 말하듯 잘 해결 할거하고 하면서(being well acquainted) 여전히 그것(부채)를 대물리는 것이 현실이다(it is true). (앞서 성경에 가난이 대물림하지 않게 하리라는 주의 약속에 반하는 현실.)


On applying to the assessors, I am surprised to learn that they cannot at once name a dozen in the town who own their farms free and clear.

자산평가사(the assessors)에 따르면, 농장을 부채없이 소유한 사람의 이름을 당장 대라면 십여명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If you would know the history of these homesteads, inquire at the bank where they are mortgaged.

이러한 자산(homestead)이력을 알고 싶다면 저당잡힌 이력을 은행에 요청하면 된다.

The man who has actually paid for his farm with labor on it is so rare that every neighbor can point to him.

노력으로 농장의 빚을 다갚은 사람이 매우 드믈어서 모든 이웃들이 그를 지목할 수 있다.
(빚 다갚은 사람은 드믈기 때문에 모두가 공히 지목할 수 있을 정도다)

I doubt if there are three such men in Concord.

그런 사람이 콩코드에 셋이라도 되는지 의심스럽다.

What has been said of the merchants, that a very large majority, even ninety-seven in a hundred, are sure to fail, is equally true of the farmers.

상인에 대해서도 농부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대다수, 100중에 97은 확실히 실패했다고 할만 하다.

With regard to the merchants, however, one of them says pertinently that a great part of their failures are not genuine pecuniary failures, but merely failures to fulfill their engagements, because it is inconvenient; that is, it is the moral character that breaks down.

하지만 상인의 경우 그중 하나는 적절히 실패의 주요 요인(a great part)이 진정 금전적인 문제라기 보다 사정이 않되서(inconvenient)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데 있다고 한다. (그런 실패는) 도덕적인 인격의 파탄(break down)이다.

But this puts an infinitely worse face on the matter, and suggests, beside, that probably not even the other three succeed in saving their souls, but are perchance bankrupt in a worse sense than they who fail honestly.

이는 아마도 영속적으로 최악인 면이 있고(물질보다 영혼의 파탄이 심각함), 나머지 셋(100중 97이 실패한 그 반대편의)이 영혼을 보전는데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나 나쁘게 보더라도(in a worse sense) 양심적으로 실패한 그들보다 파산에 가깝다는 것을 시사한다(suggest).

(뭔소린지 되씹어 보자. 맞는지 모르지만...)
100중 97은 장사에 실패. 실패 원인이 돈(물질)에 있다기 보다 약속 이행을 못한 경우도 있고 이는 도덕적 파탄(양심의 실패?)이 된다. 장사에 성공한 나머지 셋도, (간도 쓸개도 다 내줘야 한다는)장사에서 성공하려면 영혼을 보전하기 힘든데, 그렇게 본다면 이들도 파산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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