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Day 35] Economy

[Day 35] Economy

Such too, to a greater or less extent, is the condition of the operatives of every denomination in England, which is the great workhouse of the world.

크던 작던지 간에 그것 또한 세계의 공장(산업혁명 이후 번창하던)인 영국에서 명명된(denomination) 노동자(operatives)의 조건(상황)이다.

* 19세기 말의 상황.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정의(한 세대를 구분지을 업적을 이뤄낸 계층에 노동자의 기여가 적지않다)

Or I could refer you to Ireland, which is marked as one of the white or enlightened spots on the map.

지도상에 희거나 밝은 점(개화된 지역)으로 표시되는 아일랜드를 언급할 수도 있다. (19세기 말의 착취당하는 아일랜드)

Contrast the physical condition of the Irish with that of the North American Indian, or the South Sea Islander, or any other savage race before it was degraded by contact with the civilized man.

아일랜드인의 신체적 상황을 문명인을 만나서 악화되기 전의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남해섬(오지) 사람들 또는  그 어떤 미개한 종족의 것과 비교해보라(Contrast ~ with ~).

개화됐다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신체적 조건이 개화되기 이전의 미개인들에 비해 좋지않다. (개화 됐다고 노동자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습니까?)

Yet I have no doubt that that people’s rulers are as wise as the average of civilized rulers.

다만, 나는 인간의 잣대가 문명인의 평균 잣대 만큼이나 현명하다는데 의심하지 않는다.

* 인간의 가치 기준(ruler)이 문명화된 사회의 평균에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않다(평균에 대한 착시를 경계함).

* ruler, 앞서 비교해 보라고 했으므로, 비교기준이되는 잣대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미개하든 아니든 상관 없이) 사람의 기준(people’s rulers)이 문명의 평균 기준만큼이나 현명하다는데 의심이 없다. (문명이 우월하다고 하지말라!)

* 번역본에 따르면, ruler를 통치자로 보고있음. "아일랜의 통치자(people’s rulers)는 어느 문명국 통치자(civilized rulers)에 비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Their condition only proves what squalidness may consist with civilization. I hardly need
refer now to the laborers in our Southern States who produce the staple exports of this country, and are themselves a staple production of the South.

그들의 상황(노동자의 취약함)은 비열함(squalidness)이 문명과 함께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문명 반대론자는 아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 이 나라의 주요(staple)수출품을 생산하는 남부주의 노동자(실제적으로 노예를 노동자라고 함. 소로우는 적극적인 노예 반대자)이자 그들 스스로가 남부의 주요 산물이다(여전한 노예산업?).

But to confine myself to those who are said to be in moderate circumstances.

하지만 나 자신을 살만한 상황에 있다고 일컬어지는 무리(중산층)에 가두고 싶지 않다(But to confine~).


Most men appear never to have considered what a house is, and are actually though needlessly poor all their lives because they think that they must have such a one as their neighbors have.

대부분 사람들은 집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지려하지 않는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이웃이 가진 만큼 자기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전 생을 불필요하게 가난하게 보낸다. (이웃과 비교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은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뿐이다.)

As if one were to wear any sort of coat which the tailor might cut out for him, or, gradually leaving off palmleaf hat or cap of woodchuck skin, complain of hard times because he could not afford to buy him a crown!

마치 누군가 양복쟁이가 자기를 위해 잘라준 코트라면 어떤 거든(나만의 맞춤옷 이니까) 입고 다닌 다거나, 야자나무잎 모자나 우드척(북미 너구리) 가죽 모자는 슬슬 벗어 던지면서(as if) 왕관을 살 여력이 않되서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불평하고 있다.

It is possible to invent a house still more convenient and luxurious than we have, which yet all would admit that man could not afford to pay for.

모두들 그것을 살만큼 여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화려하고 편리한 집을 "발명(짖는게 아니다)"할 수 있기는 하다(still possible).


Shall we always study to obtain more of these things, and not sometimes to be content with less?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가지려 궁리하고(study) 때로는 모자람에 만족되지 못해야 할까?

Shall the respectable citizen thus gravely teach, by precept and example, the necessity of the young man’s providing a certain number of superfluous glow-shoes, and umbrellas, and empty guest chambers for empty guests, before he dies?

어느 명사(respectable citizen)가 죽기전에 여유있는(superfluous) 덧신과 우산, 손님없는 접대실의 얼마만큼(certain number)은 마련해 놓으라고 젊은 사람에게 교훈과 본보기를 가지고 엄숙하게(gravely) 가르쳐야 했나?

* (돈을 많이 번) 명망가라는 사람이 젊어서 열심히 벌어두라며 훈장질을 하는데, 그 예로 드는 것이 결국 죽으면 오지도 않을 문상객 맞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

Why should not our furniture be as simple as the Arab’s or the Indian’s? When I think of the benefactors of the race, whom we have apotheosized as messengers from heaven, bearers of divine gifts to man, I do not see in my mind any retinue at their heels, any car-load of fashionable furniture.

우리의 가구는 아랍인이나 인디언의 것 처럼 단순하면 않되는 걸까? 인간에게 하느님의 선물을 배달하는 천상의 심부름꾼(messenger)이라며 신성시 하는(apotheosize) 인간의 은인(benefactor)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나는 마음속에서 그들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어떤 일행(retinue at their heels)도 어떤 최신 유행의 가구 한 짐도 볼 수 없다,

Or what if I were to allow—would it not be a singular allowance?—that our furniture should be more complex than the Arab’s, in proportion as we are morally and intellectually his superiors!

우리의 윤리와 지성의 그들보다 우수한 만큼(in proportion) 우리의 가구가 아랍인들의 것보다 더 난해해도 된다고 할 수 있을까?

* 필수품으로서의 '집'과 장식으로서의 '가구', 집은 단순 하더라도 가구는 화려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At present our houses are cluttered and defiled with it, and a good housewife would sweep out the greater part into the dust hole, and not leave her morning’s work undone.

현재로는, 우리의 집(필수, 기초)은 가구(장식, 겉치장)으로 인해 어지럽혀지고(be cluttered), 더렵혀(be defiled) 졌고, 한 착한 주부가 커다란 먼지 구멍에 대부분을 쓸어 넣어 그녀의 아침 일거리를 남겨두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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