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forever resign the pleasure of construction to the carpenter? What does architecture amount to in the experience of the mass of men?
우리는 건설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들에게 양보해서(resign ~ to ~)야 되겠는가(Shall...)? 인간의 총체적(of the mass) 경험에서 건축이 차지하는(amount to~) 양이 얼마나 될까?
I never in all my walks came across a man engaged in so simple and natural an occupation as building his house.
나는 이제껏(in all my walks, 내가 걸어온 길에서, 내가 아는 한) 자기 집을 지으면서 그렇게 단순하고 자연적인 직업(an occupation, 일)에 종사하는(engage in) 사람을 전혀 마주친 적이 없다(never come across).
*자기 집을 지으면서 외형적 치장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We belong to the community. It is not the tailor alone who is the ninth part of a man; it is as much the preacher, and the merchant, and the farmer.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이다. 인간을 만드는 아홉번째 사림이 양복쟁이 뿐만은 아니다. 목사일 수도 있고, 상인 일수도 있고 농부일 수도 있다.
* "Nine tailors make a man", 한 남자를 만들기 위해 9명의 양복쟁이가 필요하다. "옷이 날개"와 연관된 서양 속담.
* 인간을 완성 시키는 것은 먹고 입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기여와 역활이 필요하다는 것에 비유함.
Where is this division of labor to end? And what object does it finally serve? No doubt another may also think for me; but it is not therefore desirable that he should do so to
the exclusion of my thinking for myself.
노동분담의 최종 목적지는 어딜까? 그 목표의 최종적인 역활(final serve)은 무었인가? 의심할 것도 없이 다른 사람은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을 위해 내 생각을 배제하도록 남들도 그리해야 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True, there are architects so called in this country, and I have heard of one at least possessed with the idea of making architectural ornaments have a core of truth, a necessity, and hence a beauty, as if it were a revelation to him.
사실 이 나라에는 건축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건축적 장식(A)이 진실의 핵심(집의 본질적 의미)과 필요성 그리고 마침내(hence) 아름다움(B)을 갖게 만든(make (A) have (B)) 묘안을 마치 자기에게 주어진 계시(revelation)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한명쯤 들어 봤다. (주택의 본질적 의미-소박함에서 오는-와 건축주의 요구를 담으면서도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묘안을 부여받았다고 자칭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All very well perhaps from his point of view, but only a little better than the common dilettantism.
그들 모두는(All)아마도 그의 관점에서 보면 괜찮다(well)고 하겠으나 그저 아마추어적인 미술애호(dilettantism)에 지나지 않는다(only a little better than~).
* All are very well~: 동사 are 생략?
A sentimental reformer in architecture, he began at the cornice, not at the foundation.
건축에 있어서 감성적 개혁가(reformer)는 기초가 아니라 처마장식(cornice)에서 시작한다.
It was only how to put a core of truth within the ornaments, that every sugar plum in fact might have an almond or caraway seed in it,—though I hold that almonds are most wholesome without the sugar,—and not how the inhabitant, the in-dweller, might build truly within and without, and let the ornaments take care of themselves.
그것은 설탕 없는 아몬드가 훨씬 건강식품(wholesome)이라고 믿긴 하지만 모든 사탕과자(sugarplum)안에 아몬드나 캐러웨이 씨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진실의 핵심을 장식안에 꾸며 넣으려는 방법일 뿐이며, 거주자가 안팍을 진실되게 짓게하는 방법이 아니고, 장식은 그들 스스로에게 맞겨 두려는 것이다.
It was only how to put~, and
not how the inhabitants ~, and
let the ornaments take care of themselves.
What reasonable man ever supposed that ornaments were something outward and in the skin merely,—that the tortoise got his spotted shell, or the shellfish (got) its mother-o’-pearl tints, by such a contract as the inhabitants of Broadway (got) their Trinity Church?
이성적인 사람은 장식은 그저 외형적인 것이며 거북이가 점박이 등딱지를 갖게된 것이나 조개가 진주빛깔(mother-o’-pearl tints)을 띄는 것은 브로드웨이 주민들이 3위일체 성당을 가진것 처럼 그런 결합(contract, 앞서 말한 "본질을 장식에 묻어 놓은 것")에 의한 순전히 표피상의 것이라고 간주 했을까(ever supposed)?
But a man has no more to do with the style of architecture of his house than a tortoise with that of its shell: nor need the soldier be so idle as to try to paint the precise color of his virtue on his standard.
하지만 인간은 거북이가 등껍질을 갖게된 것 만큼이나 자기집 건축의 양식외에 (결정할 것이)없다. 병사가 아주 한가하여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의 힘(virtue, 장점)의 정확한 색을 칠하려 할 필요는 없다(자신의 용맹을 과시하려고 깃발에 칠을 하는 것).
The enemy will find it out. He may turn pale when the trial comes.
(그래봐야) 적에게 쉽게 발견될 뿐이다. 시험(the trial)에 닥치면 곤경에 처할(turn pale) 것이다(선명한 색을 칠했다가 창백해 짐).
* 손수 건축으로 얻는 즐거움과 그 의의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건축 문화적 배경 없이는 작가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옮겨놓고 나니 자칫 아무말 대잔치가 된 것 같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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