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Day 38] Economy

[Day 38] Economy

I cannot but perceive that this so called rich and refined life is a thing jumped at, and I do not get on in the enjoyment of the fine arts which adorn it, my attention being wholly occupied with the jump;

* 앞 단원에서 세가지 시선이 있었다: 자기 집의 벽난로 위 장식을 자랑하는 집주인. 이를 칭송하는 손님.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마룻바닥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저자

부와 세련된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향상(발전)을 보여준다는데(a thing jumped at) 동의할 수 없다(받아 들일 수,perceive) 없다.

for I remember that the greatest genuine leap, due to human muscles alone, on record, is that of certain wandering Arabs, who are said to have cleared twenty-five feet on level ground.

내가 기억하기에 인간의 근육만으로 가장 재능있는 높이뛰기 기록으로는 한 방랑 아랍족이 25피트(7.5미터 가량)를 뛰었다는 것이다.

Without factitious support, man is sure to come to earth again beyond that distance.

인공의(보조의) 발판없이 인간이 다시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 거리도 그정도 쯤이라고 확신한다.

The first question which I am tempted to put to the proprietor of such great impropriety is, Who bolsters you? Are you one of the ninety-seven who fail? Or of the three who succeed?

그런 굉장한 불가능한 능력(impropriety)을 보유한 자(proprietor)에게 하고(put to) 싶게 만드는(be tempted to) 첫번째 질문은,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은 실패한 97인가? 아니면 성공한 3인가?

* Occupy Wall street 운동이 기억난다. 상위 3프로가 부의 97프로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Answer me these questions, and then perhaps I may look at your bawbles and find them ornamental.

이에 대하여 먼저 답을 달라. 그것을 들어보고 당신의 속보이는 것들(baubles,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평을 좀 해달라고 보여주는 사치품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장식적인 면이 있긴 한 것인지 찾아보겠다(자랑 하고푼 위선의 물건이 아닌 원래용도인 장식품의 요소가 있는지 찾아보겠다)


The cart before the horse is neither beautiful nor useful.

(말이 마차를 끄는 것인데) 말 앞에 마차를 앞세우는 것은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유용하지도 않다(19세기 말, 신 문예사조라며 추상화, 기인들 등장하여 기괴한 것을 보여주며 예술이니 혁신이니 한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Before we can adorn our houses with beautiful objects the walls must be stripped, and our lives must be stripped, and beautiful housekeeping and beautiful living be laid for a foundation:

아름다운 물건으로 우리의 집 벽을 장식하기 전에, 벽을 먼저 깨끗하게 벗겨내야(strip 벗기다, stripe 줄긋다)하고 우리 생활의 때를 벗겨내야 하고, 아름다운 집관리(잔꾀 부리지 말고)와 아름다운 생활(청렴)을 기본으로 깔아둬야 한다(must be laid).

now, a taste for the beautiful is most cultivated out of doors, where there is no house and no housekeeper.

그러고 난 후에(now)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취향이 집이나 집관리인이 없는 문밖으로 표출될 것이다(먼저 바탕을 올곧게 하면 굳이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피어날 것이다.)


Old Johnson, in his “Wonder-Working Providence,” speaking of the first settlers of this town, with whom he was contemporary, tells us that “they burrow themselves in the earth for their first shelter under some hillside, and, casting the soil aloft upon timber, they make a smoky fire against the earth, at the highest side.”

존슨님(Old, 옛사람의 경칭으로 사용됨)께서 그도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을의 초기 정착자들에 대해 말한 그의 글 "놀라움이 작동하는 섭리"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전했다. "그들은 산비탈 가장자리(hillside)의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burrow, 굴을 파다), 통나무를 얹은 위에 흙은 뿌리고(casting soil), 윗 부분에 (무너져 내리지 않게) 연기불(훈연)으로 다졌다(make).

* “Wonder-Working Providence"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기적이 행해지는 섭리"라고 해야 할지?

They did not “provide them houses,” says he, “till the earth, by the Lord’s blessing, brought forth bread to feed them,” and the first year’s crop was so light that “they were forced to cut their bread very thin for a long season.”

그가 말하길, "그들은 신의 가호로 땅이 그들을 먹일 빵을 가져오기 전까지 그들에게 집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첫해의 수확이 너무 작아서 "그들은 긴 계절(겨울)내내 그들의 빵을 아주 얇게 썰도록 강요 받았다(be forced to)."

--------------------------------------------
* 멋진 수동형 문장들이다. 의역하면 영어 수동형 문장이 주는 감성이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가 서양적 어법에 익숙해 있는 탓인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땅이 그들을 먹일 곡식을 가져오기 전까지 스스로 집을 제공하지 않았다."

땅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곡식을 내준다. 논리에 안맞지만 땅이 주체이다. 논리에 맞추면 감성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곡식의 생산은 이곳에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내린 것으로 보고 집을 짖겠다는 겸손함이 우러나는 문장이다.

"하나님의 곡식이 생산될 때까지 집을 짖지 않았다"

라고 하면 청교도들의 겸손의 느낌이 없다. 그렇다고  "이땅에 하나님의 기적이 행해 질때까지.."는 좀 과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긴 계절 내내 그들의 빵을 아주 얇게 썰도록 강요 받았다."

수동형 문장, "강요 받았다"는 겸손해 지라며 신께서 내린 고난을 감내하는 구도의 느낌이 난다. "빵을 얇게 썰다"는 고난의 모습이 떠오른다. 의역하여,

"빵을 아껴먹어 긴 계절을 대비해야 했다"

히면, 인간의 의지로 고난을 헤쳐 나간다는, 겸손이 사라진 느낌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